

Sir. Baseball player
CON:◆ ◆◆◆◆
OBS:◆◆◆◆◇
STR:◆◆◆◆◆
AGL:◆◆◆◆◆
LUK:◆◆◇◇◇
INT:◆◆◆◇◇

노력하면 알아줄 거라 믿습니다.
Talent Explanation
정의 :: 9명씩으로 이루어진 두 팀이 9회씩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승패를 겨루는 구기 경기. 공력 하는 쪽은 상태 편 투수가 던진 공을 배트로 치고 1, 2, 3루를 돌아 본루로 돌아오면 1점을 얻는 스포츠를 야구라고 하며, 이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선수로서 활동하는 인물을 야구선수라 한다.
업적::
9살에 형을 따라서 지역구 리틀 야구단에 가입해, 포수 포지션으로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무렵 전국 중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활동. 또한 중학교 2학년 때는 WBSC 15U(15세 이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볼 배합 능력으로 투수를 리드해 상대 타자를 공략하는 경기를 이끌어 갔고, 나이에 비해 월등한 타구력으로 안타와 홈런을 노려 최다 우승국이었던 쿠바를 꺾고서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 주면서 신인 유망주로 언론에 언급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7년간 고수해온 포수 포지션을 투수 포지션으로 급작스레 변경.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선 그는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등등.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성인 프로 선수들의 실력을 뛰어넘는 섬세한 제구력과 압도적인 구속력으로 3년간 고교 야구계의 정점을 유지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 인기가 없었던 고교 야구는 그의 학교가 시합 일정이 잡힌 날이면 관중석이 만석으로 꽉 차는 것은 물론, 고교 야구 중계의 시청률 또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업적을 받은 것은 18세 시절. 19살이 되기도 전에 국내의 유명한 구단은 물론 그 외 해외 구단들과 MLB의 스카우트 제의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는 구단과의 계약을 끝마치기까지 전 세계의 이목을 받아 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야구선수로서의 재능은 물론, 그의 스타성은 이미 프로를 뛰어넘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Sir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Commission : @MominaiLine
Personality
부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던 형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강 찬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 슬픔을 바라보는 것이 버거웠다.
그는 누군가의 고통을 마주한 이상 외면하지 않았으며 차라리 자신이 그 고통을 짊어지고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고자 한다.
Past History
- 6살 무렵, 형의 첫 야구 시합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지역구에서 열린 비공식이나 마찬가지였던 연습경기. 비록 9살에 불과했던 제 형이 마운드에 올라서서 그보다 덩치가 큰 6학년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던 모습이 그렇게나 빛나고, 강인해 보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날 형과 함께 하는 야구를 꿈꾸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포수로써 형이 던지는 공을 받는 것이 좋았고, 같은 팀으로써 그라운드 위에 서는 게 좋았다. 하지만 형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딱 2년뿐, 3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강 찬은 형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형이 다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뒤따라 진학하면서 언젠가 배터리로써 함께할 날을 기다리며 야구에 매진했다.
-꿈이 좌절된 것은 형의 부상 소식을 들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형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강 찬은 자신이 7년간 고수해왔던 포지션을 버리고 투수로 마운드에 서는 것을 택했다. 형의 투구폼을 따라 하고, 형의 주특기였던 체인지업과 포크를 제 주특기처럼 사용하면서 형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는 형에게 증명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마운드 위에 섰던 당신은 이렇게나 빛났다고.
-야구를 시작한 날에도, 칭호를 받았던 날에도, 성인이 되어 구단에 입단한 날에도 강찬의 변함없는 목표는 오직 하나. ‘형과 함께 야구를 하는 것.’ 열심히 던지고 던지다 보면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형이 다시금 선수로 복귀해 함께 그라운드에 서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그는 형을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하고자 한다.







